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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리포트 '고래'한국의 고래

[한국의 고래] 신출귀몰 귀신고래

# 신출귀몰 귀신고래

    귀신고래는 귀신처럼 나타났다 귀신처럼 사라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머리만 살짝 내밀고 있다가 불쑥 튀어 올라 뱃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영문명은 회색 고래, Gray Whale입니다. 본래 피부는 검은 색인데 몸에 따개비와 굴 껍데기 등이 붙어 있어서 멀리서 보면 무수히 많은 회색 반점에 덮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몸에 불어 있는 따깨비는 귀신고래마다 모양과 문양이 달라서 개별 개체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귀신고래는 사람보다 7~8배 정도 깁니다. 몸길이는 12~14미터, 몸무게는 30~35톤에 이릅니다. 가장 큰 특징은 목에 2개에서 최대 5개의 주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름 사이로 사람 손도 들어갑니다. 또 브리칭을 할 때보면 몸 길이에 비해 팔이 짧은 편입니다. 혹등고래와 구별할 수 있는 중요특징입니다. 멕시코에 가면 귀신고래를 볼 수 있고 또 배에 다가오는 귀신고래를 만져볼 수도 있는데요, 얼굴은 탄성이 아주 높은 고무공을 만지는 느낌이 듭니다. 몸에 붙은 따개비는 우리가 아는, 진짜 흔한 따개비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턱에 돋은 수염은 1~2cm로 짧은데 플라스틱 이쑤시개랑 촉감이 비슷합니다.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는데 두 개체군이 있습니다. 오호츠크 해와 우리나라 동해를 오가는 작은 개체군은 북서태평양 개체군=한국계 귀신고래. 알래스카와 캐나다 서안, 캘리포니아, 멕시코를 오가는 북동태평양 개체군=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 둘은 유전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단일 종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가 물을 뿜고 있다. 아직 완전한 성채가 되지 않는 개체로 몸길이가 작고 몸에 붙은 따개비도 많지 않다.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가 물을 뿜고 있다. 아직 완전한 성채가 되지 않는 개체로 몸길이가 작고 몸에 붙은 따개비도 많지 않다.


# 한국계 귀신고래

    우리나라는 고래 중에서도 '귀신고래'에 대한 관심이 각별합니다. 100여종의 고래 가운데 유일하게 학명에 KOREA가 들어가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인 고고학자 '로이 채프먼 앤드류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 한국계 귀신고래, Korea Gray Whale입니다. 앤드류스는 1912년에 울산 장생포에 머물면서 귀신고래를 연구했습니다. 동양포경회사는 우리 연안에서 잡은 귀신고래 41마리를 앤드류스에게 연구 자료로 제공했다고 합니다. 당시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는 멸종된 것으로 보고됐기 때문에 귀중한 연구자원이었습니다. 

    남종영 기자가 쓴 <고래의 노래>를 보면 1911년에서 1933년까지 일제가 우리 바다에서 잡은 '귀신고래'만 자그마치 천300여마리가 됩니다. 그래서 당시 우리 바다에 1,000마리 내지 1,500마리 정도의 귀신고래가 살고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 포경회사들이 귀신고래뿐만 아니라 참고래, 밍크고래 등 고래라는 고래는 다 싹쓸이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우리 어민들이 일제에 배운 방식으로 계속 고래를 잡았습니다. 지금 우리 바다에서 대형 고래들이 사라진 이유입니다.  

    다행히 1993년 미국과 러시아 학자들이 사할린 연안에서 귀신고래 수십마리를 발견해 멸종은 피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후 해마다 개체수가 3% 정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울산MBC는 2004년 러시아 사할린에서 귀신고래를 찾아 카메라에 담았다.
울산MBC는 2004년 러시아 사할린에서 귀신고래를 찾아 카메라에 담았다.


#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

    귀신고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의 오호 데 리에브레 석호(Ojo De Liebre lagoon)입니다.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고 키우는 곳입니다. 북태평양에서 출발해 캐나다와 미국을 지나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두세 달에 걸쳐 16,000km를 유영합니다. 새끼를 낳으면 그 먼 길을 또 돌아가야 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4.5미터에 1톤쯤 됩니다. 어미는 새끼 고래를 수유하는 6~7달 동안에는 먹이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취재진이 갔던 2월에는 당시 천여마리의 귀신고래가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고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고래 탐사선이 있는데 석호안에서 12노트 이상 속도를 낼 수 없습니다. 고래를 발견하면 속도를 최대한 낮추거나 시동을 끕니다. 짝짓기를 하면 30미터 이상 거리를 둡니다. 고래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시동을 끄고 기다리면 간혹 호기심 많은 고래들은 고래 탐사선에 다가와 한참을 놀다 갑니다. 고래가 다가오면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3월에는 엄마 고래와 새끼 고래가 함께 다니는 걸 더 많이 목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고래 탐사선은 허가받은 26척만 운행을 하고 최대 12명까지 승선시킬 수 있습니다. 또 고래 번식기에는 어로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섭니다.

오호 데 리에브로 석호를 운영하는 고래 탐사선. 관광객들이 고래를 보고 즐거워하고 있다.
오호 데 리에브로 석호를 운영하는 고래 탐사선. 관광객들이 고래를 보고 즐거워하고 있다.

    북동태평양 귀신고래도 영국과 미국 제국주의에 의해 멸종 위기에 있었습니다. 18세기에 영국이 이곳을 발견하고 기름을 얻기 위해 귀신고래를 잡았습니다. 19세기에는 미국에서 오호 데 리에브레 석호에서 고래를 발견하고 마구 남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석호는 고래의 천국에서 고래의 지옥이 되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1949년부터 상업포경을 금지시키고 생물 보존을 위한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는 개체수가 2만6천마리로 늘었습니다. 더 이상 세계멸종위기종이 아닙니다.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 3마리가 고래 탐사선 주변을 돌고 있다. 2018년 촬영 장면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 3마리가 고래 탐사선 주변을 돌고 있다. 2018년 촬영 장면


# 멕시코로 간 한국계 귀신고래? 바바라가 남긴 숙제


    귀신고래(Gray whale)는 태평양 동쪽과 태평양 서쪽에 사는 종이 다르고 서로 교류가 없다고 여겨왔습니다. 과학자들은 두 집단의 귀신고래가 형태와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어 각각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1년 미국과 러시아 연구자들이 귀신고래의 이동경로를 알아보기 위해 사할린에서 7마리 귀신고래에 위성추적장치를 붙였습니다. 이 가운데 바바라를 포함해 3마리가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로 향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 고래는 북아메리카 서쪽 해안을 따라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까지 1만 880㎞를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42일 동안 머문 뒤 다시 북상 길에 올라 알래스카와 태평양을 건너 사할린까지 다시 1만㎞ 이상을 헤엄쳤습니다. 이 귀신고래는 172일 동안 태평양을 왕복하는 총 2만 2511㎞를 평균속도 시속 5.5㎞로 이동했습니다.

    이 발견은 많은 의문을 남겼습니다. 동서 태평양의 귀신고래가 같은 무리인지, 아니면 한국계 귀신고래가 사라진 빈자리에 개체수가 늘어난 캘리포니아 개체군이 진출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멕시코 엘 비즈카이노 고래보호구역 내에서 자연사한 고래의 뼈.
멕시코 엘 비즈카이노 고래보호구역 내에서 자연사한 고래의 뼈.


홍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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