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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불균형 특집 4 부작

<‘예비타당성 조사’는 타당한가?>


2부. 예비타당성 조사, 타당한가?

경북 영양군의 전체 면적은 약 815k㎡, 서울시의 전체 면적보다 34% 이상 넓습니다.그런데 영양군에는 왕복 4차로가 넘는 도로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영양군과 주변 지역을 잇는 유일한 광역도로인 이 국도 31호선도 왕복 2차로, 편도 차로는 하나뿐입니다. 아침 출근시간, 차 한 대만 속도를 늦추면, 뒤따르는 차들은 전부 거북이걸음입니다. 기다리다 못한 차들은 중앙선을 넘어 위험천만하게 추월을 시도합니다.

좁은 것만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2020년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하이선,급격하게 불어난 물에 도로가 전부 물에 잠겨 버렸습니다.

비가 안 와도 문제입니다. 침수가 됐던 그 자리, 도로 바로 옆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입니다. 떨어지는 돌을 막겠다고 겹겹이 그물을 쳐놨지만 역부족입니다.

나쁜 도로 사정은 또 다른 위험을 야기합니다.
영양군 주민 중 40% 가까이는 65세가 넘는 고령층입니다. 하지만 응급실을 갖춘 병원은 단 한 곳뿐이고, 중증 환자를 받아줄 역량도 안 됩니다. 가장 가까운 큰 병원까지 가려면 국도 31호선을 탈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속도를 내도 1시간 20분은 걸려야 병원에 도착합니다.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도, 제 때 치료를 받으면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양에서 그러지 못해 숨지는 사람은 인구 10만 명 중 108명에 이릅니다. 서울 강남구의 3.6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지자체도 오랫동안 국도 31호선을 개선해 달라고 국가에 요구해 왔습니다.이에 따라 지난 2016년 국토교통부는 영양 구간 5.4km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 사업은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무산됐습니다. 국도를 개선하는 데 투자하는 돈이 1이라면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은 0.43에 불과해손해를 볼 거라고 판단하면서 사업이 탈락된 겁니다.

참다 못한 주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습니다. 지역 단체 81곳이 결합한 위원회의 이름은 '영양군민통곡위원회'. 열악한 도로 때문에 이웃이 죽고 다치는 걸 끊임없이 보며 수십 년을 통곡해 왔다는 이유였습니다. '통곡의 길'이라는 이름을 달아 홍보 영상까지 만들었습니다. 구불구불한 국도 31호선을 따라 붙인 현수막에는, '여기에도 사람이 삽니다'는 영양 주민들의 절규가 담겨 있습니다.

도로는 지역 구성원에게 기본적인 편의와 공익을 제공하는 시설물인 사회기반시설 중 하나입니다. 사회기반시설은 국민의 일상생활에 늘 관련되고, 한 사회의 기반이 되며, 지역과 국가 전체의 발전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국가가 직접 투자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비수도권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사회기반시설이 아예 없거나, 영양군의 사례처럼 턱없이 부족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중 하나가 병원, 정확히는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입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휩쓴 코로나19 대유행. 바이러스는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번졌지만, 유행을 막을 방어벽의 높이는 지역마다 천차만별로 달랐습니다.

그리고 인구 110만 명이 넘는 광역시인 울산에는, 사실상 방어벽이 없다시피 했습니다.울산에는 공공병원이 한 곳도 없습니다. 울산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지역의 민간 병원에 이들을 입원시켰지만, 코로나19처럼 감염 위험이 높은 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할 시설은 민간 병원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유행이 한창 심각할 때는 울산의 확진자들이 부산과 경남, 대구, 심지어는 차로 2시간 반 거리에 있는 경북 안동의 병원까지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지역의 민간 병원이 코로나19 확진자로 꽉 차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실 코로나19라는 돌발적인 상황으로 모든 시민이 한꺼번에 깨달았을 뿐, 울산의 의료 환경은 수십 년 전부터 낙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코로나19 유행 전 5년 동안 필수 보건의료 영역에서 지역 주민들이 의료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받고 있는지 조사해 봤더니, 울산 시민의 절반 가까이가 울산을 떠나 타 지역에서 외래나 입원 치료를 받았고, 이렇게 타 지역 병원에 쓴 돈은 1천 917억 원이 넘습니다.

특히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암 환자들이 타 지역으로 유출되는 경우가 많았고, 울산에는 정신질환 입원 치료를 받을 병상이 턱없이 부족해 정신질환 환자들이 타 지역을 떠도는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또 공업도시인 울산은 특성상 산업재해나 직업병 환자가 많은데, 가장 잦은 산업재해 중 하나인 화상을 치료할 전문 병원조차 없어 중증의 화상 환자들은 멀리 부산까지 옮겨지기도 합니다.

울산시는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된 이후부터 지역에 공공병원을 지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왔고, 지난 2004년에는 보건복지부가 울산에 공공병원을 설립하는 사업도 추진했지만,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탈락했습니다.

당시 조사 보고서를 확인해 봤더니, 공업도시라는 울산의 특성 때문에 산업재해나 직업병 같은 특수한 진료 요구가 지역 주민들에게서 발생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지역 병원이 이들의 재활 기능을 담당한다면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고까지 봤습니다. 하지만 사업 계획에 공공진료기관으로서의 특성을 충분히 담지 않았고, 비용 대비 경제적 이익도 너무 적다며 부정적인 결론을 내린 겁니다.

기다리다 못한 지역 시민단체는 공공병원 사업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 조사 자체를 면제해 달라는 서명 운동을 벌였습니다. 울산 시민의 5분의 1 가까이가 서명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지만, 그런데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국회가 공공병원 설립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해 줬지만, 기획재정부가 다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타당성조사를 하기 전에 예산부터 편성하는 건 절차상 순서가 안 맞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주장대로 울산 공공병원 설립 사업은 올해 1월부터 다시 타당성 조사에 돌입했고, 울산시는 또 기획재정부의 조사 결과만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입니다.

예비타당성 조사의 기원은, 1997년의 대한민국 외환위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면서국제기구인 IMF의 지원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던 바로 그 사건입니다.

가장 먼저 긴축의 대상이 된 건 한꺼번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사회기반시설 조성 사업이었습니다. 명분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사회기반시설을 만들기 전에 그 사업을 하는 게 타당한지 조사하는 제도는 있었지만, 사업을 추진하는 부서가 스스로 타당성을 조사하다 보니 1994년에서 1998년까지 실시했던 조사 33건 중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난 건 단 1건 뿐일 정도였습니다.

이에 따라 1999년, 재정 낭비를 막고 무분별한 국책 사업의 추진을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사업을 추진하는 당사자인 정부 대신 제3자인 전문 조사 기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사업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겁니다. 그만큼 지출의 필요성을 꼼꼼히 따지지 않아 예산이 낭비될 위험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예산 편성과 지출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민감합니다. 예비타당성조사는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함으로서 예산 낭비를 막도록 설계됐습니다.그래서 초창기 예비타당성조사는 정치적 고려 없이 비용 대비 효과가 얼마나 나올지를 판단하는 경제성 분석과, 사업이 지역에 가져올 파급효과나 지역의 낙후도를 고려하는 정책성 분석만으로 사업 시행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초기부터 이 조사가 지역의 낙후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인구나 자원이 모두 수도권에 몰려 있어서 비수도권 지역은 예비타당성 조사가 요구하는 경제성 기준을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국가가 조사라는 명분을 내세워 비수도권 지역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계속됐습니다.

비수도권 지역의 이런 비판은 근거가 있는 걸까요. 취재진은 그동안 정부가 진행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 822건을 입수했습니다. 이 중 비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벌였던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들을 살펴보고, 조사 결과가 지역이 납득할 만한 것이었는지, 실제 지역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했는지 분석 작업을 벌였습니다.

경북 영덕군은 대게 산지로 이름난 지역입니다.영덕군은 지역을 대게 관광지로 더 키워보고 싶었지만 열악한 도로 사정이 늘 발목을 잡았습니다. 영덕은 경부나 중앙고속도로 등 주요 고속도로와 통하는 길도 부족했고, 충청도 등 내륙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아예 없었습니다. 국토교통부도 이런 필요성을 인정해 경상북도 상주에서 안동을 지나 영덕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과 2004년 벌인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는 탈락이었습니다. 2000년 상주-안동 구간 조사에서는고속도로가 지역균형개발 차원에서 지역 발전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비용 대비 편익은 적다고 판단했습니다.

2004년 안동-영덕 구간 조사에서는영덕 등 경상북도 지역이 낙후된 이유가 고속도로 같은 간선 도로망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고까지 보고도, 고속도로 신설은 경제성이 부족해 비효율적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진척을 보지 못하던 사업은 2008년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을 목표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주고 나서야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개통한 상주-영덕 고속도로. 예비타당성조사의 예상과 달리 개통 직후부터 차량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종점인 영덕 톨게이트에서는 극심한 정체가 빚어지고 휴게소에는 주차할 공간조차 부족할 정도여서 고속도로의 수요를 너무 적게 잡은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개통 6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어떨까요.
휴일을 맞은 영덕 강구항. 점심 식사시간이 가까워지자 관광객들의 차량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아직 대게 제철까지는 2달 가까이 남았는데도 식당마다 손님들로 꽉 찼습니다. 실제로 강구항은 고속도로 개통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습니다.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영덕 강구항을 찾은 관광객은 한 해에 아무리 많아도 200만 명대에 머물렀는데, 고속도로가 개통된 직후인 2017년 곧바로 362만 명으로 급증했고, 관광업계가 코로나19 유행의 직격탄을 맞은 2020년에도 320만 명을 넘기면서 국내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관광지로 등극하기까지 했습니다.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된 사업이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을 거둔 상황을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실제로 2004년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는 고속도로 건설을 통해 발생하는 편익을 운행비용이나 통행시간, 사고 비용 절감 등 다른 도로 대신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효과만을 계산했을 뿐, 고속도로로 인해 관광 수요가 새롭게 생겨나는 등 이용량 자체가 늘어날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또 예비타당성 조사가 사회기반시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지역의 현실을 잘 모른 채 진행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가 바로 울산에 있습니다.

국도 7호선 울산시 경계 구간은 상습적인 정체로 악명높은 도로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정체 현상은 수도권에서 도로가 밀리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벌어집니다. 출퇴근 차량만으로 도로가 밀리는 것이 아니라, 각종 화물차들이 대거 섞여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먼저 교통사고 위험이 훨씬 커집니다.

또 국도 7호선을 이용하는 화물차들은 주로 공장에 원료나 부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화물차들의 이동 시간이 길어지면 물건 공급도 늦어지고 기업의 생산에도 차질이 빚어집니다.

국도 7호선을 이용하는 화물차들은 어디서 올까요. 대부분은 울산 본항에서 원료나 부품을 싣고 나오는 차들이고, 지난 1997년 건설된 울산 신항에서도 화물차들이 진입해 옵니다. 울산항은 부산항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큰 항구이고, 그만큼 항구를 이용하는 물동량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화물차들이 이용할 전용 도로가 없어서 국도에서 일반 차량과 뒤섞여 위험하고 느린 행렬을 이어가는 겁니다.

울산시와 해양수산부는 국도 7호선의 고질적인 정체를 풀고, 울산항의 물류 이동도 개선하기 위해 도로 신설을 추진해 왔습니다.남쪽의 울산신항을 시작으로 울산본항까지 잇는 도로를 만들어 화물차 전용도로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입니다.두 항구만 이어서 무슨 효과가 있겠냐 싶지만, 더 큰 그림이 있습니다.

울산시는 이미 북구 지역에 7번 국도의 우회도로인 오토밸리로를 개통해 화물차 이용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 과제로, 남구의 울산항 지역과 북구를 잇는 남북 간선도로인 동부도시고속도로를 계획해 뒀습니다.이 도로가 모두 이어지면 울산항에서 출발한 화물차들은 도심 도로로 진입하거나 일반 승용차와 만날 일 없이한 번에 울산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겁니다.

2015년 해양수산부가 벌인 자체 타당성 조사에서는 비용 대비 편익이 1.45로 경제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2018년 기획재정부가 벌인 예비타당성 조사에서는 비용 대비 편익이 0.62로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불과 3년 사이에 점수가 왜 이렇게 낮아진 걸까요?

도로를 이용할 화물차의 수요를 분석할 때, 원래는 지역을 오가는 물동량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행정구역을 넘나들며 먼 거리를 운송하는 차량이 많은 울산항 배후도로에 적합한 방식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2012년부터 '차량의 대수를 기준'으로 수요 계산법을 바꾼 겁니다. 울산시는 이같은 수요 측정 방식이 불공평하다고 건의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전국적으로 일관된 자료를 가지고 분석해야 한다며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2018년 예비타당성조사를 탈락한 뒤에는 울산시도, 해양수산부도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 수십 년 동안 불편을 겪어 온 경북 영양의 국도 31호선은어떻게 됐을까요?영양군민통곡위원회가 행동에 나선 지 2년 뒤인 지난해 8월, 국도 31호선 개선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습니다.

통과의 비결은, 조사 방식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예비타당성조사가 경제성만 지나치게 중시해 비수도권 지역의 사회기반시설 조성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기획재정부는 2019년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를 손질했습니다.

기존에는 경제성의 비중이 최대 절반에 달했고, 지역균형발전의 비중은 많아도 30%대에 머물렀지만, 제도가 개편되면서 경제성 점수의 비중은 줄이고 지역균형발전 점수의 비중을 40%까지 늘린 겁니다.

그렇다고 이제 비수도권의 숙원 사업들이 다 해결되고 사회 기반시설이 넉넉히 지어질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지역균형발전 항목에서 비수도권 지역에 가중치를 더 주면실제로 사업 통과 가능성에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지 예측해 본 연구입니다. 그동안 지역균형발전 항목의 가중치는 꾸준히 증가해 왔습니다. 지역균형발전 항목 가중치는 조사에 참가하는 평가자들이 사업의 내용이나 대상 지역의 낙후도 등을 감안해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정해지는데요. 2006년에는 최소 15%에서 최대 25%까지 줄 수 있도록 했고, 이 비율은 계속 올라가 마지막에는 최대 35%까지 늘어났습니다.

이 기간 동안 진행된 사업이 623건에 달하고, 평가에 참여한 사람은 천 명이 넘어갈 정도이기 때문에, 평가자들이 준 가중치를 평균 낸다면 중간 정도의 점수를 받았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사해 본 결과는 달랐습니다. 평가자들이 실제로 준 가중치는 그 어떤 기간에도 조사 지침이 제공한 가중치 범위의 중간값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가중치의 비율이 가장 높았던 시점에 평가자들이 실제로 준 가중치는 제일 야박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김의준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여전히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 때문에 평가자들이 지역균형발전 가중치를 박하게 주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아무리 지역균형발전의 가치나 낙후지역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해도 예비타당성조사는 경제성을 위주로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난 겁니다. 그래서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울산이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울산항 배후도로 건설 사업. 만약 도로가 건설된다면 울산은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국도 7호선의 정체만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화물차가 사라지니 통행도 편해지고 매연과 소음 공해도 줄어인근 지역의 주거 여건이 더 좋아집니다. 교통 상황이 좋아지는 만큼 인근 지역에 기업이 더 들어와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평가하는 지역 경제효과는 도로 그 자체를 지을 때 발생하는 고용이나 생산만을 계산해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통해 그 지역이 얼마나 성장할지, 향후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지를 더 구체적으로 계산해 예비타당성 조사에 반영하자는 제안입니다.

국회에서도 비수도권 지역의 어려운 사정을 아는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경북 구미시를 지역구로 둔 구자근 의원은 예비타당성조사의 지역균형발전 가중치를 높이거나, 예비타당성조사를 시행하는 사업의 비용 기준을 올려서소규모 사업은 곧바로 진행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남 고흥과 보성군, 장흥군, 강진군이 지역구인 김승남 의원은 낙후도가 심각한 지역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아예 면제해 주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비타당성 조사의 문턱을 낮추는 것만이 비수도권 지역의 발전을 위한 유일한 답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만약 예비타당성 조사가 거의 의미가 없어져서 모든 지역이 원하는 사업을 다 추진하게 되면, 한정된 정부 예산을 모든 지역에 나눠줘야 하고, 그러면 어느 곳도 사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예비타당성 조사를 아주 면제해 주는 게 지역에 꼭 도움이 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 대회를 유치하겠다며 8천 700억 원을 투입한 전남 영암의 F1 경기장은 2013년 이후로 단 한 차례도 경기가 열리지 않으며 적자만 1천 900억 원씩 나는 지역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했고, 예타 면제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논란으로 아직까지도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세금 낭비나 잘못된 재정 집행을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를 아예 무시해 버릴 경우 천문학적인 예산을 낭비할 위험도 그만큼 커지는 겁니다. 그래서 예비타당성 조사의 문턱은 적절하게 유지해 사업의 필요성을 객관적이고 꼼꼼하게 조사는 하되, 이후의 정책 결정과 예산 배분 과정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는 참고의 영역으로 두고, 지역과 중앙이 협의하고, 정치권의 논의를 거치는 등 자율성을 주자는 제안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