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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불균형 특집 4 부작

<‘예비타당성 조사’는 타당한가?>


3부. 일본 영국 현지취재, ‘예비타당성 조사’ 해외에서는?

일본 제 2의 도시 오사카.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대도시로 8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상업중심도시입니다. 오사카시를 포함한 오사카부는 도쿄 수도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광역경제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오사카를 지나는 새로운 신칸센의 경로가 확정되면서주민들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사카는 일본 제2의 도시였지만 도쿄에 비하면 사회기본시설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 800만명이 넘는 인구의 이동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교통수단이 필수입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세계적으로 이름난 고속열차, 신칸센.

신칸센은 일본 열도 전역에 걸쳐 다양한 노선을 따라 운영하고 있는데, 신속성과 정시성, 안전을 자랑하는 신칸센은 모든 지역에서 원하는 인프라이기도 합니다.

지금 간사이 지역에는 신칸센 공사가 한창입니다. 건설 작업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뤄지고 있습니다. 오사카 지방을 지나는 호쿠리쿠 신칸센의 신규 경로가 확정되어 현재 공사 중입니다.

원래 오사카에는 신칸센 노선이 2개뿐이었는데 이제 새로운 노선이 추가로 지나가게 됐습니다. 지역의 끊임없는 요구로뒤쳐진 지역의 활성화를 위한장기적인 계획이 수립된 겁니다.

그런데 최근 사업이 결정된 호쿠리쿠 신칸센의 신규 경로를 다시 보면,경제적으로는 다소 비합리적이지만 조금 낙후된 지역에 신칸센이 지나면서 발생할긍정적인 효과를 먼저 고민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이런 철도와 같은 국가가 투자하고 관리하는 공공사업인 사회기반시설을 조성할 때 어떤 방식으로 결정할까요? 일본도 우리의 예비타당성조사와 비슷한 비용편익분석을 이미 25년 전부터 도입했습니다. 비용편익분석은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경제성, 즉 국가가 시설에 투자하는 비용 대비 효과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조사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일본도 공공사업을 함에 있어 이 비용 편익 분석 방식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비용 편익 분석을 진행하면서 비용이 편익과 비슷하거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1 또는 1.5를 넘길 때 사업을 진행해 왔는데, 인구와 이동이 많은 대도시의 경우 편익이 높기 때문에 비용편익 분석을 통과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인구가 적은 지역의 경우 편익보다 비용이 높아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시가 아닌 지역, 시골에서는 좀처럼 도로나 철도 같은 국가가 한꺼번에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공공시설을 지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신칸센은 국가의 건설 결정이 나면, 노선을 정하는 것은 지역과 지역이 고민해서 국가와 협의 후 결정하는 형태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 바로, 간사이 광역 연합입니다. 간사이 광역 연합은 이들 지역의 행정을 연합해 사회기반시설 계획을 세우고 국가에 요청하는 역할을 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간사이 광역 연합 내 광역 인프라 연구 그룹이 2013년부터 호쿠리쿠 신칸센의 발전 촉진을 위해 정부와 여당에 요청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사실 간사이 광역 연합 결성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간사이의 모든 지역이 찬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기에는 굳이 법률에 얽매이지 않고 상호 협력만 잘하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참여하지 않는 지방이 있기도 했습니다. 광역연합에 종속될 것이라며 각 지자체 의회에서 반발이 심하기도 했습니다.

전 간사이 광역 연합장 이도 씨.
작년까지 간사이 광역 연합을 10년 넘게 이끌어 온간사이 광역 연합 초대 연합장입니다.다양한 지역이 모인 큰 연합체인 만큼 각 지역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를 조정하는 것은쉽지 않았습니다.

주목할 것은 연합의 방침인데, 각 지역의 의견이 다수결이 아닌 전원 일치합의하는 방식으로 운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2022년 현재, 발족 10년을 넘긴 간사이 광역연합은 총인구 2천만명이 넘는 거대한 지자체가 됐습니다. 오사카, 교토, 고베 등 규모가 있고 개성이 강한 도시들로 구성돼 있다 보니 이들을 잘 조화시키면서도 각자의 특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료, 관광, 산업, 문화, 방재, 직원 연수, 시험 등 7개 분야를각 도시마다 하나씩 권한을 주고 공통으로 연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관광이나 문화는 교토에서, 지진이나 방재 관련은 고베에서 맡는 식입니다.

특히 성공적으로 운영되며 주목 받는 것은도쿠시마에서 담당하고 있는 광역 의료 체제입니다. 간사이 광역 연합의 또 다른 목적은 지방 분권을 추진하는 것이었습니다. 간사이 광역 연합은 지방자치법상 국가에 대해 사무 이양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이런 규정을 바탕으로 국가와 교섭을 시도해왔지만, 정부가 가지고 있는 국토 계획이나 대형 인프라에 대한 권한을 간사이 광역권으로 이관해달라는 요구는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교섭을 하기에 앞서정부가 바뀌면서 정책 방향에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사이 광역 연합은 지역들의 특성을 살리면서 간사이 전체 도시 발전을 생각하며 지자체나 주민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며 협력해왔습니다. 지자체의 권한과 능력을 모았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을 안은 채 진정한 지방분권, 정부 권한의 이양은 간사이 광역 연합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시티오브런던.
잉글랜드 은행을 포함한 5천여 개의 금융기관이 몰려있는 런던 금융의 중심지입니다. 이 곳을 지나는 뱅크역은 최근 보수 공사를 마쳤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고 터널을 건설하는 등역 내부를 확장했습니다.

런던의 지하철은 1863년에 시작해 150년 동안 운행해 온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입니다. 그 역사만큼 노후화되어 공사가 필요한 역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뱅크역이 공사를 하게 된 건뱅크역이 영국에서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뱅크역이 위치한 시티오브런던은 뉴욕 월 스트리트와 함께 세계금융의 양대 산맥으로, 이곳을 지나는 뱅크역이 런던에서 가장 복잡한 역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뱅크역과 달리 영국 대부분의 지하철역들은 수리가 시급할 정도로 낙후되어도 그 대상이 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회기반시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 정부도 도로 같은 사회기반시설을 만들 때 우리나라의 예비타당성 조사처럼 비용과 편익을 계산합니다.

그런데 영국도 이 문제로 수도 런던을 포함한 남부 지역과 북부 지역과의 갈등이 크다고 합니다. 북부 지역 주민들은 영국 정부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채 남부나 런던에서 적용되는 평가 기준을 북부에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며 불만이 큽니다. 비용과 편익을 고려하자 소위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런던 및 남동부 지역에 사회 기반 시설이 집중되는 현상이 영국에서도 발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구가 적어 매번 사회기반시설 설치에서 후순위로 밀렸던 영국 북부는 이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 북부. 그 중심인 맨체스터는 제조업과 생산을 바탕으로 발전을 이룬세계 최초의 산업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산업의 흐름이 바뀌면서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의 쇠퇴는 철도와 도로같은 사회기반시설의 낙후로 이어졌습니다.

정부 지원을 기다리다 지친 맨체스터는 광역 맨체스터 연합에서 해결방법을 찾습니다. 광역 맨체스터 연합은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10개의 지방 정부와 3백만 명의 주민들이 모인 연합 기구입니다. 인구상으로는 런던에 이어 영국 3위권 대도시권을 형성합니다. 2011년 세워진 광역 맨체스터 연합은영국 정부에 줄기찬 요구 끝에, 2016년 도시, 지방 분권법에 의해 의료와 주택 등을 직접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받았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교통분야인데 광역 맨체스터 연합의 교통국, TFGM입니다. 광역 맨체스터 교통국은 도로와 버스, 철도 등 광역 맨체스터 연합 내에 어떤 교통시스템을 세우고 운영할지 직접 결정합니다. 광역 맨체스터 교통국은 가장 먼저 맨체스터의 낙후된 교통문제 해결에 나섭니다.

맨체스터 동부지역. 이 곳은 1980년대 구조조정 이후 기업들이 파산하고지역 전체가 비면서 변변한 교통편조차 없었던 곳입니다. 맨체스터 시가 올림픽 유치를 목적으로 지은 경기장이 있었지만, 경기장을 지나는 제대로 된 교통편이 없었습니다. 이때 광역 맨체스터 교통국은 이곳에 트램을 건설해 맨체스터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트램이 들어서면서 경기장 접근성이 좋아지자 유동인구가 늘며 상권이 발달했고, 이스트 맨체스터는 도시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곧 도시의 발전 가능성을 눈치챈 아부다비 기업의 투자로 이어졌고, 구단주 만수르의 지원에 힘입어 맨체스터 시티는 맨유를 능가하는 축구팀이 됐습니다. 그러자 축구 클럽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인 에티하드 스태디움은 오늘날 전세계에서 수많은 팬들이 찾는 대표적인 명소가 됐고, 이는 지역 전체에 새로운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맨체스터의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 샐퍼드. 19세기 영국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섬유 가공으로 산업화에 큰 기여를 했지만 20세기에 들어 점차 쇠퇴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까지 트램이 연결되자,많은 투자자들과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BBC, 각종 방송국, 대기업이 자리를 잡아대표적인 Media city가 됐습니다.

그동안 교통시스템이 런던에 집중돼 홀대받았던 맨체스터가 자체적으로 교통시스템을 갖추며 도시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교통 인프라에 대한 장기적이고 적극적인 투자가쓰러져 가는 도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도시로 거듭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광역 맨체스터 연합이 이런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건 지방 정부로서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비용과 편익만 따지며 런던 위주의 정책을 펼쳤던 영국정부도 관심을 보이며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 어떤 도시를 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비전,그리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정부와 정치권, 무엇보다 지역이 중심이 된 일관성 있는 합의와 실행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