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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톡톡 취재수첩

[지역불균형 연속기획] 우리나라 균형 발전 문제, 대안은?

  • 방송 : 울산MBC 라디오 <김연경의 퇴근길톡톡> 표준FM 97.5 (18:10~19:00)
  • 진행 : 김연경 앵커
  • 대담 : 유희정 취재기자
  • 날짜 : 2022년 10월 26일 방송


취재수첩 시작하겠습니다. 울산MBC 보도국 유희정 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울산MBC가 10월부터 보도특집 TV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지역 대 개조>인데요. 울산을 포함한 비수도권 지역들이 수도권에 비해 발전과 번영의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그래서 소멸 위기에 처한 실태를 짚어보는 기획입니다. 다음 달 3일까지 4부작으로 방송되고요. 방송된 프로그램은 유튜브 '울산MBC뉴스' 채널에서 '지역 대 개조'를 검색하시면 보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이 특집 제작에 직접 참여한 유희정 기자와 함께, 이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알아보려고 합니다.

Q. 비수도권 지역의 발전이 더디고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실태를 알리는 프로그램이라고 전해 드렸는데요. 왜 이 제도에 주목을 하신 건가요?

우리가 뉴스를 보거나 듣다 보면요. 지역에서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오르내리는 이름이 '예비타당성 조사'입니다. 그리고 뉴스를 만드는 저희들도 지역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 조사에 대한 언급을 정말 많이 해요.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가 핵심' '이번에도 탈락' '면제받을 방법을 찾아야' 이런 식의 제목 정말 많이 들어 보셨을 거에요. 이러다 보니까 예비타당성 조사는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하는 벽이거나, 혹은 사업을 가로막는 거대한 걸림돌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사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가 재정의 낭비를 막고 대규모 사업의 필요성을 검증하기 위한 객관적인 조사 절차의 하나일 뿐이고요. 이 조사에서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반드시 사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국가 재정을 잘 쓰기 위한 절차의 하나의 뿐인데, 이렇게 지역 발전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로 여겨지는 현실이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어요. 여기서부터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Q. 그럼 일단 예비타당성 조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우리가 논의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게 뭡니까?

예비타당성 제도는 국가재정법에 규정되어 있는 제도입니다. 국가재정법 38조의 내용을 먼저 읽어 드릴게요.

제38조(예비타당성조사) ①기획재정부장관은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으로서 특정한 대규모사업에 대한 예산을 편성하기 위하여 미리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요약하여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최근에 정부가 규정을 바꾸도록 해서 총 사업비는 아마 1000억 원으로 상향될 것 같긴 한데요. 어쨌든 대규모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을 벌여야 할 때, 특히 거기에 국가의 돈이 많이 들어갈 때 이 조사를 꼭 진행해야 하는 겁니다. 조사 대상이 되는 사업들 중에서 비수도권이 주목하는 건 ‘건설공사가 포함된 사업’인데요. 비수도권 지역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유지하거나 외부로부터의 인구 유입을 유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회기반시설이 많이 부족하잖아요. 이를테면 도로나 항만, 철도, 혹은 병원 같은 시설들인데, 이런 시설을 지을 때는 대부분 돈이 많이 들고요. 특히 건설공사가 들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숙원사업을 추진하려고 할 때마다 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게 되는 겁니다.


Q. 이런 조사를 왜 하는 건가요?

이건 예비타당성 조사가 왜 시작됐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있는데요. 예비타당성 조사의 기원은 놀랍게도 1997년의 대한민국 외환위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면서 국제기구인 IMF의 지원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던 바로 그 사건이죠. 이 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IMF가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주긴 하는데, 빌려주는 조건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특히 고속 성장을 추구하던 경제 정책을 바꾸고 긴축 정책을 펴는 쪽으로 경제 운용의 틀을 바꾸게 했어요.

이렇게 되니까 당장 재정 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건데, 이럴 때 가장 먼저 돈을 안 쓰기가 좋은 게 한꺼번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사회기반시설 조성 사업이었던 거에요. 그리고 긴축을 할 명분도 충분히 있었던 게, 이전에도 사회기반시설을 만들기 전에 그 사업을 하는 게 타당한지 조사하는 제도는 있었지만, 사업을 추진하는 부서가 스스로 타당성을 조사하다 보니 1994년에서 1998년까지 실시했던 조사 33건 중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난 건 단 1건 뿐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타당성 조사가 공사 전에 벌이는 요식 행위가 되어 버렸던 거죠.

그래서 도입된 게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입니다. 1999년부터 운용이 됐는데요. 무분별한 국책 사업의 추진을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입니다.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의 뜻 그대로 답이 있는 게, 사업을 시작하기 전인 예비로, 사업의 타당성을, 전문적으로 조사한다는 겁니다. 단 사업을 추진하는 당사자인 정부 대신 제3자인 전문 조사 기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사업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정부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독립적으로 객관적으로 신중하게 이 사업을 시작할까 말까를 결정하기 위한 정보를 생산하는 과정인 겁니다.


Q. 이 조사는 어떻게 진행이 되나요?

1999년대 조사가 도입된 뒤부터 조사 방식에 여러 번 개편이 있긴 했는데요. 초창기에는 사업의 경제성과 정책성 두 가지를 봤어요. 경제성은 말 그대로 경제적이냐는 겁니다. 들이는 비용 대비 효과가 얼마나 나올 것이냐를 보는 것이고, 정책성은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게 그 지역의 발전이나 국가 전체의 정책과 일치하는지 등을 살펴보는 거죠. 최근에는 조금 조사 방식이 바뀌어서 평가 요소가 세 가지입니다. 기존의 경제성과 정책성 분석은 그대로 두고요. 최근에 지역 소멸이나 불균형 발전 문제가 제기가 되니까, 지역 균형 발전에 이 사업이 얼마나 기여할지를 살펴보는 평가 요소가 추가됐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를 전문가들이 평가해서 결과를 산출합니다. 경제성은 1이 기준입니다. 1이면 비용 대비 편익이 똑같다는 의미죠. 정책성은 사업에 따라 다르지만 0에서 1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간혹 1이 넘기도 합니다. 보통 경제성은 적어도 0.8은 넘어야 하고요.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 수치를 종합해서 0.5는 넘어야 사업을 할 만하다고 평가합니다.


Q. 그런데 이 조사 방식이 왜 수도권에게만 유리하고 비수도권에는 불리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요?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사업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경제성, 투입한 비용 대비 효과가 얼마나 될 지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비용’과 ‘효과’에서 변동이 큰 쪽은 ‘효과’입니다. 도로를 신설한다고 할 때, 산악지형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자면 서울이든 울산이든 도로를 짓는 비용은 거의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효과는 그렇지 않죠. 예를 들어서 인구 111만 명인 울산시, 948만 명이 넘는 서울시에서 도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물류 개선이나 이동 편익의 정도는 압도적으로 차이가 날 겁니다.

이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인구가 많고 이미 기반시설이 촘촘히 마련돼 경제적 효과를 끌어내기 쉬운 서울과 수도권은 어떤 사업에서든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줄고 산업 동력이 떨어지는 비수도권에서는 예비타당성조사의 벽이 나날이 높아지겠죠. 그래서 예비타당성조사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오히려 벌려놓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고, 정부도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경제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사업을 추진할 여지를 준다거나, 낙후된 지역에는 가산점을 주는 방식도 고려해 봤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비수도권이 추진하는 많은 대규모 사업들이 경제성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Q. 그래서 지역에서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받아서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려고 하기보다는 조사 자체를 면제받으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요. 이건 어떤 경우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국가재정법에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습니다. 같은 국가재정법 38조에 규정돼 있는데, 먼저 법령 본문을 소개해 드릴게요.

지역 균형발전, 긴급한 경제ㆍ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하여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종전에 경제성 부족 등을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업은 연계사업의 시행, 주변지역의 개발 등으로 해당 사업과 관련한 경제ㆍ사회 여건이 변동하였거나, 예비타당성조사 결과 등을 반영하여 사업을 재기획한 경우에 한정한다)으로서 다음 각 목의 요건을 모두 갖춘 사업.

가. 사업목적 및 규모, 추진방안 등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수립된 사업

나.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하여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된 사업

들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듯하긴 한데 구체적인 이유가 딱 짚이는 건 없습니다. 그럴듯한 표현이지만 구체적이거나 수치화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할 만한 부분을 찾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에는 정치적 판단이나 지역 안배와 같은 ‘가치’의 문제가 개입하게 되어, 개발 사업의 탈정치화를 목표로 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를 그 취지부터 무력화시키고, 뒷일을 책임지지도 못할 선물을 지역에 안겨준다는 선심성 행정, 이른바 포퓰리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비수도권, 낙후지역이 필수적인 기반시설을 확보해 최소한의 살 만한 여건을 갖추는 일은 예비타당성조사의 틀 안에서든, 또 다른 방법을 통해서든 법과 제도의 안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게 지역의 입장에서도 당당한 거죠. 이런 사업을 정당이나 정치인의 (불필요한) 개입을 통해서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비상식적일 지도 모릅니다.


Q. 그러니까 예비타당성 조사를 꼭 안 하는 게 지역 입장에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네요.

그런 이유는 거꾸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나라 돈을 1000억 원씩이나 가져다 쓰는데, 최소한의 타당성 조사도 거치지 않고 그냥 쓰는 건 적절하냐는 거죠.

또 예비타당성 조사를 아주 면제해 주는 게 지역에 꼭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는 사례도 실제로 많습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 대회를 유치하겠다며 8천 700억 원을 투입한 전남 영암의 F1 경기장은 2013년 이후로 단 한 차례도 경기가 열리지 않으며 적자만 1천 900억 원씩 나는 지역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했고, 예타 면제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문제로 아직까지도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세금 낭비나 잘못된 재정 집행을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를 아예 무시해 버릴 경우 천문학적인 예산을 낭비할 위험도 그만큼 커지는 겁니다.

또 지역 입장에서는 지역에서 꼭 필요한 사업인데 예타 문턱이 너무 높으니까 차라리 이걸 정치적으로 갖고 가서 ‘지역 국회의원이라든지 정당 쪽에 해서 특별법을 만들어서 면제를 시도하자’ 이게 (지역에서) 많이 가는 시나리오거든요. 그렇게 되다 보면 이게 정말 사업 자체가 필요 없는 사업이 면제가 될 수도 있고, 꼭 필요한 사업인데 예타를 가다 보면 떨어질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이 굉장히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게 오히려 더 비효율적인 거죠.


Q. 그러면 어떤 대책이 있을까요?

그래서 예비타당성 조사의 문턱은 적절하게 유지해 사업의 필요성을 객관적이고 꼼꼼하게 조사는 하되, 이후의 정책 결정과 예산 배분 과정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는 참고의 영역으로 두고, 지역과 중앙이 협의하고, 정치권의 논의를 거치는 등 자율성을 주자는 제안도 나옵니다.

예타의 정보생산 기능, 또 그리고 정책 당국자의 정무적인, 정책적인 판단에 대한 고려, 그리고 정치적인 협상 과정들, 모두 다 각각의 역할이 있겠죠. 예비타당성 조사는 연구 자료에 가까운 것인데 그것을, 그 결과를 아무런 추가적인 고려 없이 그대로 따라서 예산 배분을 하는 것 자체도 그렇게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민주적이지 않죠.

다시보기: [울산MBC보도특집] 지역대개조 2부-예비타당성조사는 타당한가

유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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