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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 습격 농장주인 사망..불법 사육장의 비극


[한밤 중에 날아든 안전 안내 문자: 곰 세마리 탈출사건 발생]

12월 8일 밤 11시 25분. 울산 울주군청은 범서읍 중리의 한 농장에서 곰 세마리가 탈출했다며 주변지역으로의 외출을 자제하라는 안전 문자를 시민들에게 단체 발송했습니다. 10여분 뒤 곰 세마리를 모두 사살했다는 문자가 날아들며 긴급 상황은 종료되는듯 했지만 농장주인인 60대 부부가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사실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기사 다시보기> 사육농장 탈출 곰 3마리 사살..주인 부부는 사망(2022.12.9/뉴스투데이)

사건은 8일 밤 9시 37분쯤 서울소방본부로 걸려온 전화에서 시작됐습니다. "울산에 계신 부모님이 기르는 곰을 보러 농장에 갔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119신고가 접수됐고, 긴급상황은 즉시 울산으로 전파됐습니다. 경찰과 구급대, 야생동물 피해방지단 엽사 3명이 출동했지만 농장 주인 부부는 곰의 공격을 받아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지난해 곰 탈출 소동..불법 사육장 존재 드러나]

해당 농장은 지난해 5월 암컷 곰 1마리가 탈출해 소동을 빚었던 곳입니다. 당시 농장에서 2㎞가량 떨어진 텃밭에 곰이 출몰해 사육장의 존재가 드러났는데요. 불법 미등록 사육시설로 밝혀졌습니다. 국제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을 기르기 위해서는 정당한 사육시설 갖추고 환경부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농장주는 2018년 7월 경기도의 한 농장에서 반달가슴곰 4마리를 울산으로 데려와 낙동강유역환경청에 농장 임대차계약서를 내고 곰 사육장을 정식 등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시설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반려돼 불법시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농장주는 2020년과 이듬해 각각 300만 원씩 두차례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4년 넘게 곰을 키워온 겁니다.



[낡고 좁은 사육장..철창 속 곰은 어떻게 지냈을까]

다음날 농장과 연결된 진입로는 철저히 통제됐습니다. 경찰과 관공서 차량만 출입이 허락됐습니다. 곰 사육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모인 취재진들이 드론을 띄워 봤지만, 오르막 산길 끝자락에 자리잡은 드넓은 농장의 지붕 형태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물었더니 뒷산 능선을 따라 산길을 계속 오르면 사육장으로 갈 수 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곧장 뒷산으로 이동해 ENG카메라를 들쳐메고 가뿐 숨을 몰아쉬길 1시간여,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 사육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시멘트로 지어진 사육장은 단층 건물에 철문을 통해 드나들 수 있는 방이 두 칸이 있었습니다. 높이는 2m, 가로는 약 5m, 세로는 7m가량 돼 보였는데 분뇨 냄새 등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철문 앞에는 드럼통을 잘라 만든 사료통이 두개 놓여져 있었는 데 사료 상태가 건조한 것으로 볼 때 어젯밤 농장 부부가 먹이를 주려 철창문을 연 것으로 추정됩니다. 열린 문 옆에는 검붉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고 엽총 탄피도 발견됐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방은 환풍 설비가 갖춰져 있었는데 바닥에는 짐승의 뼛조각들과 스티로폼 박스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 방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반달가슴곰 4마리..1마리는 병사?]

경찰은 농장 주인 부부가 곰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추가 수색 끝에 더 이상 곰은 발견되지 않았고 숨진 부부의 자녀가 사육장에 있던 곰 4마리 중 1마리는 병들어 죽었다고 진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격한 등산(?)을 하고 돌아오는 길 마지막 세번째 방에서 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곰 뿐아니라 돼지나 염소 등을 키우는 농장이라고 했는데, 하필 곰이 머무르는 사육장 끝방에 짐승뼈가 널브러져 있었던 걸까요. 스티로폼 포장 용기는 대체 무엇에 쓰려고 갖다놓은 것일까요.



[미등록 사육장 뒤늦게 '전수조사'..곰 보호시설 신축]

정부는 전국에서 사육 중인 곰은 600여 마리, 불법 증식된 곰은 20여 마리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반복되는 불법 개체 증식과 탈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전남 구례와 충남 서천에 곰 보호 시설을 짓고 있는데요.

부랴부랴 전수조사에 나선 환경부는 보호시설이 완공되면 불법이라고 해도 사유재산인 곰을 몰수한 뒤 보호시설로 옮길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진작에 곰 보호 시설이 완공돼 두 차례의 벌금 대신 곰을 몰수하는 처분이 내려졌다면 어땠을까요.

2026년 1월 1일부터 곰 사육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는 소식은 아쉬움을 더할 뿐입니다.


<관련 기사 다시보기>  미등록 곰 사육장 4년 운영하다 참변..60대 부부 숨져(2022.12.9/뉴스데스크)



최지호 기자 choigo@usmbc.co.kr

최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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