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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울산시 승격과 함께 공업화가 급속히 진행된
<\/P>지난 6-70년대 울산의 모습과 발전상을
<\/P>한 눈에 볼 수 있는 기록 사진물이 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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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사진으로 보는 울산의 발전사를 한동우 기자가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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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음악 3초)
<\/P>울산이 시로 승격된 직후인 천960년대 시가지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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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 때만해도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은 모래언덕을 중심으로 앞강,뒷강으로 나눠져
<\/P>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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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인구가 채 10만이 되지 않던 시절, 남구 신정동 일대는 건물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허허벌판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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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힘들었던 보릿고개 시절,시민들은 구호양곡을 배급받기위해 길게 줄지어 기다려야만 했고, 넝마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P>삶의 고달픔이 짙게 베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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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마실물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주민들은 급수차량의 물이 떨어질까봐 조바심을 내며 뛰어야 했고,마을급수터에는 늘 차례를 기다리는 물양동이가 줄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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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창문이 떨어져나가고 기둥으로 겨우 받쳐놓은
<\/P>한 초등학교 교실이 당시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P>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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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0년대초 학생들의 등,하교길 교통수단이었던 나룻배는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P>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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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INT▶서직자(사진속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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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도시발전을 가속화했던 공업화의 물결속에 울산항 개항과 함께 정유공장과 비료공장들이 잇따라 들어서고,현대조선소 등도 서서히 제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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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공업축제가 처음으로 열리고,미스공업센터로 선발된 당시로서는 보기힘든 미인들의 카퍼레이드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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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0년대들어 언양울산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P>하루만에 서울을 오가는 고속버스가 다니기 시작했고,울산비행장도 만들어져 교통이 크게 편리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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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밖에도 이번에 발간된 기록물에는 일본 강점기의 울산의 모습을 담은 희귀사진들도 실려 있어 향토사는 물론 한국 근대사 연구에도
<\/P>귀중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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