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 커 ▶
울주군 범서읍 출신의 독립운동가, 학암 이관술을 아십니까.
1930-40년대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국가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해 잘 알려지지 못한 인물인데요.
최근 서훈의 걸림돌이 됐던 위조지폐 사건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홍상순 기자입니다.
◀ 리포트 ▶
울주군 범서읍 입암마을에 있는 학암 이관술 선생의 생가.
울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지만 생가는 현재 다른 사람의 소유이고, 마을에 있는 추모 비석도 곳곳이 훼손돼 있습니다.
사회주의 계열 활동 이력을 문제 삼아 반공단체들이 부순 겁니다.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국내로 돌아와 교사로 일하던 이관술 선생은,
1930년 광주에서 조선 여학생 희롱 사건이 터지자 이를 계기로 항일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경성반제동맹 등 청년과 노동자 조직을 중심으로 한 비밀 항일 활동을 주도했습니다.
일제에 맞서 지하조직을 운영하며 민중 기반 독립운동을 전개해 두 차례 옥고를 치르고 7년 이상 수배 명단에 올라 있었습니다.
이렇게 항일 운동에 앞장서며 해방 이후 조선을 이끌어갈 지도자로 손꼽히기도 했지만, 이관술 선생은 아직도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한 사실은 명백하지만 1946년 위조 지폐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는 게 문제가 된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이 사건이 당시 미군정과 경찰이 조작한 사건으로 드러나며 79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후손들의 간절한 요청에도 보류됐던 독립 서훈의 길이 열린 겁니다.
[손옥희 이관술 선생 외손녀/경북 포항시]
"79년만에 재심 무좌가 나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고 또 앞으로 할아버지처럼 억울하게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분들이 아마 많이 힘을 얻어서"
80년 가까이 잊혀졌던 이관술 선생의 독립운동이 다시 조명되면서 지역에서도 독립운동 활동을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이관술 선생 외에도 이우락, 손후익 등 7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입암마을이 선바위지구 개발 구역에 포함돼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이상구/울주군 범서읍 청년회장]
"구획정리가 완료가 됐을 때 학암 선생 외에도 아산 선생이나 문암 선생 같은 경우 많은 분들이 있으니까 기념관이 세워져서"
학암 이관술 선생에 대한 서훈은 빠르면 오는 8월 광복절에, 늦어도 11월 순국 선열의 날에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MBC뉴스 홍상순입니다.
(영상취재:최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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